27개월 아이 역할놀이 시작, 인형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면 자연스러운 발달일까
며칠 전 저녁, 아이가 장난감 바구니에서 토끼 인형을 꺼내더니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혀놓고 작은 이불을 덮어주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토닥토닥 손을 움직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저는 잠깐 손을 멈추고 한참 바라봤습니다. 그전까지는 장난감을 쌓거나 열고 닫는 놀이가 더 많았는데, 그날은 분명히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히 본 걸 따라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인형에게 밥을 먹이는 척을 하기도 하고, 장난감 컵을 입에 대고 마시는 척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전화기 장난감을 귀에 대고 혼자 한참 중얼거리며 노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장난감을 그냥 만지는 게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 놀기 시작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27개월 전후 아이에게 역할놀이가 시작되는 시기를 어떻게 보면 좋은지, 어디까지를 자연스러운 발달로 이해할 수 있는지, 부모는 어떤 태도로 반응하면 좋은지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장난감이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기 시작한 순간
처음에는 그냥 장난감을 손에 쥐고 흔드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인형을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주거나 컵을 입에 가져다 대는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장난감이 더 이상 그냥 물건이 아니라, 아이 안에서는 어떤 역할을 가진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시기 전까지는 장난감을 손에 쥐고 흔들거나, 블록을 쌓고 무너뜨리거나, 눈앞의 기능을 반복하는 놀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장난감을 도구처럼 쓰기 시작합니다. 인형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장난감 컵을 가져다가 물 마시는 척을 하고, 자동차끼리 부딪히는 장면을 만들면서 자기 방식대로 놀이를 이어갑니다. 저희 아이도 처음에는 장난감 냄비와 컵을 꺼내놓고 그냥 뒤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보니 인형 앞에 컵을 가져다 놓고,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는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날은 토끼 인형을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바로 직전에 그렇게 논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럴 때 부모는 “혼잣말을 많이 하는데 괜찮은 건가?”, “혼자만 노는 것 같은데 문제는 없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할놀이는 꼭 다른 사람과 대화하듯 놀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자기 머릿속에서 상황을 만들고, 장난감에 의미를 붙이고, 평소 본 장면을 다시 꺼내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발달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27개월 역할놀이는 보통 이런 흐름을 보여줍니다.
-장난감에 실제 의미를 붙이기 시작함
-본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장면을 이어감
-놀이 안에서 말, 표정, 감정 표현이 함께 늘어남
-혼자서도 짧은 상황극처럼 놀이를 이어갈 수 있음
이런 모습이 보인다면 상상놀이와 상징놀이가 자라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할놀이는 기억, 상징화, 상상, 언어가 함께 움직이는 놀이 발달의 한 형태입니다. 이는 영유아 발달 자료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흐름과도 맞습니다.
이전 단계에서는 질문이 많아지며 언어와 사고가 함께 확장되는 흐름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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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처럼 들리지만, 놀이 안에서는 이야기였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이 처음에는 별 의미 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말은 장난감과 상황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밥 먹이는 척을 하면서 말을 붙이고, 재우는 장면에서 소리를 내고, 전화하는 놀이를 하면서 짧은 말을 반복하는 모습은 놀이 안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역할놀이가 시작된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놀지는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인형 놀이를 먼저 시작하고, 어떤 아이는 자동차나 동물 피규어로 상황극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날은 길게 놀다가도, 어떤 날은 다시 단순 반복 놀이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제는 잘 놀았는데 오늘은 왜 안 하지?”라고 바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역할놀이가 보이면 “이제 계속 이렇게 놀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밥 먹이는 놀이를 오래 하다가도, 다음 날은 블록만 반복해서 쌓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가 놀이 안에서 의미를 붙이는 장면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히 보였습니다.
부모가 먼저 보면 좋은 기준은 아주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그냥 만지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 “척”하는 행동이 있는지
-평소 본 장면을 놀이로 다시 보여주는지
-놀이 중에 짧게라도 말이나 소리를 붙이는지
-장난감에 감정이나 역할을 부여하는지
이런 흐름이 있다면 너무 조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기의 놀이는 완성된 사회극이 아니라 짧고 단순한 역할 재현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또래 간 편차도 큰 영역입니다. 다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놀이가 전혀 확장되지 않고, 상호작용·언어·모방 행동도 함께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단순히 “역할놀이가 늦다”로만 보기보다 전체 발달 흐름을 함께 보는 편이 좋습니다.
이 부분은 역할놀이만 떼어 보는 것보다 언어, 모방, 상호작용을 같이 봐야 한다는 일반적 발달 원칙에 기반한 판단입니다.
부모가 많이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이 시기의 역할놀이를 볼 때 제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부모가 너무 빨리 “정답”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이가 인형을 재우는 모습을 보면 “이불은 이렇게 덮는 거야”라든지, 장난감 컵을 이상하게 쓰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처럼 무의식적으로 고쳐주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이가 금방 흥미를 잃거나 놀이를 멈춰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먼저 지켜보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아이가 인형을 눕히면 “아기가 졸렸나 보다”, 컵을 들고 오면 “차 마시는 거구나”처럼 짧게 받아주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자기 흐름을 끊지 않고 다음 장면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또 어떤 날은 아픈 척을 하며 병원 놀이처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도움이 되었던 건 아이 놀이를 평가하지 않고, 말로 살짝 확장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기 재우는 거야?”
“토끼가 배고팠나 보다”
“전화 왔어?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야?”
처럼 놀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붙여주는 방식입니다. 또 한 가지는 부모가 꼭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역할놀이는 혼자 놀 때도 충분히 자랍니다. 오히려 아이가 혼자 중얼거리며 상황을 이어갈 때, 자기 생각이 더 잘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놀아줄 때는 아이 흐름을 따라가고, 혼자 놀 때는 너무 빨리 개입하지 않는 쪽이 더 편안했습니다.
결국 부모가 기억하면 좋은 건 세 가지 정도였습니다.
-놀이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먼저 지켜보기
-아이가 한 행동을 말로 가볍게 받아주기
-틀렸다고 고치기보다 놀이 흐름을 이어가게 도와주기
이 시기를 지나면서 저는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도 아이가 얼마나 많은 걸 떠올리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결과를 보려 했다면, 지금은 아이가 놀이 안에서 어떤 장면을 만들어내는지를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가 부모 마음도 훨씬 편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이 시기를 지나면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놀이가 더 넓어지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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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 CDC 발달 이정표 자료
-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 HealthyChildr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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