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사회성 (감정 문해력, 갈등 회복력, 경청)
밖에서는 선생님께 칭찬만 받고 친구도 잘 챙기는 아이가, 집에 오면 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까요. 저도 처음엔 이 질문에 화가 먼저 났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뒤집어보니, 그게 오히려 사회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의 사회성, 밖에서만 보면 절반밖에 모릅니다.
감정 문해력과 갈등 회복력, 사회성의 진짜 뿌리
사회성을 말 잘하고 붙임성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연구 결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성인 발달 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는 80년 넘게 수백 명의 삶을 추적한 세계 최장기 심리 종단 연구입니다.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란 동일한 대상을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반복 관찰하는 방식으로, 단기 실험과 달리 삶의 흐름 전체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의 책임자 로버트 월딩어(Robert Waldinger) 교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산 사람들의 공통점이 학벌도 수입도 아닌 관계의 질이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https://www.adultdevelopmentstudy.org)). 그리고 그 관계의 질은 어린 시절 사회성과 직결된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성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아동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 박사가 수십 년간 연구한 결과, 감정 코칭(emotional coaching)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또래 관계, 학업, 면역력 면에서 모두 우위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출처: The Gottman Institute](https://www.gottman.com)). 감정 코칭이란 아이가 감정을 표현할 때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즉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먼저 이름을 붙여주고 공감해주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 감정 문해력(emotional literacy)입니다. 감정 문해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저도 둘째를 키우면서 이 개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친구들을 잘 챙겨준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원하는 게 안 되면 한 시간씩 떼를 씁니다. 처음에는 그게 불일치처럼 보였는데, 결국 아이가 집에서 감정을 전부 내려놓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억눌렸던 정서적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죠. 이와 맞닿아 있는 것이 갈등 회복 탄력성(conflict resilience)입니다. 갈등 회복 탄력성이란 친구와 싸운 뒤 감정이 가라앉으면 스스로 먼저 다가가 관계를 복원하는 내적 능력을 뜻합니다. 사회성이 높은 아이들은 싸우고 나서 관계가 끊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자기 감정을 먼저 조절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갈등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변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좌절 내성(frustration tolerance)입니다. 좌절 내성이란 실패나 좌절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는 심리적 내구성입니다. 게임에서 일부러 져주거나 아이가 울 때마다 즉각 해결해주면 이 내성이 자랄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저도 그 유혹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짜 승리를 반복해서 줄수록, 나중에 진짜 실패 앞에서 무너지는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회성이 좋은 아이가 갖추는 핵심 역량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 문해력: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 갈등 회복 탄력성: 갈등 이후 관계를 스스로 회복시키는 능력
- 좌절 내성: 실패와 좌절을 견디며 다시 시도하는 심리적 내구성
- 정서적 자기 조절: 감정이 올라올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능력
경청과 배려의 구체성, 부모가 먼저 보여줘야 하는 이유
말 잘하는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부모가 공을 들입니다. 그런데 잘 듣는 아이를 키우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영적 경청(reflective listening)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다시 돌려주는 기술입니다. 여기서 반영적 경청이란 "그러니까 네 말은 친구가 먼저 그런 거잖아, 억울했겠다" 식으로 상대의 내용을 요약해서 확인해주는 방식입니다. 이 기술이 몸에 밴 아이는 친구 관계에서 "왠지 저 애 옆에 있으면 편하다"는 인상을 자연스럽게 줍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아이가 말하는 도중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말이 끝난 뒤 "그래서 속상했구나"라고 한마디 더 얹어줄 때, 아이가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반영적 경청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고, 아이는 그 경험을 고스란히 친구 관계에서 써먹게 됩니다.또 한 가지 쉽게 지나치는 부분이 배려의 구체성입니다. "배려해야 해"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사회성이 높은 아이들의 배려는 훨씬 구체적입니다. 친구가 크레파스를 찾으면 말없이 밀어주고, 친구가 발표를 망쳤을 때 "나도 저번에 틀렸잖아"라고 말해줍니다. 이런 행동은 감정 문해력이 뒷받침될 때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상대의 감정을 읽으니까 지금 뭐가 필요한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배려를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모가 일상에서 "저 할머니 짐이 무거우시겠다, 도와드릴까"라고 먼저 말해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이는 배려를 개념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착한 아이가 사회성이 좋은 아이는 아닙니다. 싫을 때 싫다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탁하는 능력과 거절하는 능력, 이 두 가지가 함께 갖춰져야 관계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나중에 완성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역할극으로 먼저 연습해보는 것이 실전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상위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상위인지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는 능력으로, 쉽게 말해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능력입니다. 아이가 멍하니 앉아 블록을 쌓거나 혼자 중얼거리며 노는 시간이 바로 이 능력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심심함을 견디는 시간이 사라지면 이 내면 근육도 함께 사라집니다.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부모인 저도 지치지 않게 제 마음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가장 많이 합니다. 감정을 집에서 쏟아내는 아이를 매일 받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아이를 이해하는 만큼, 그 감정을 받아내는 부모 자신의 정서적 자기 조절도 같이 챙겨야 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아이가 감정을 꺼낼 때, 딱 한 번만 더 이름을 붙여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충분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3z_Xui3C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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